
작년에 한국에 출장을 갔을 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매했던 <삼대>를 드디어 읽어보았다. 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지문으로 나오고 수능기출문제집이나 모의고사에서도 종종 나오던 그 소설이다. 문제집으로 많이 보던 소설이라 그런지 전형적인 '알지만 알지 못하는' 그런 소설이 아닌가 싶다.
소설은 조부 조의관과 부친 조상훈,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인 아들 조덕기로 이어지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부자 가문의 이 3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통적인 대지주와 정미소로 부를 이어오는 조의관과 그의 부로 먹고 사는 그의 아들과 손자 그리고 아내와 그들의 식구 및 그의 부를 탐내는 수원댁과 그 일당들이
만들어내는 당시 삶의 민낯이다. 겉으로는 신지식인이자 기독교인이지만, 결혼 후 교인의 딸이자 자신의 아들의 동창인 홍경애를 꼬셔서 임신을 시킨 후, 떼어내고 싶지만 그래도 남주기는 싫어하면서 또다른 제 2의 첩을 만들고 자신의 부친의 돈을 탐하고 노름을 하며 자신의 아들에게 간 유산을 문서위조와 일본형사를 사칭하며 강탈하는 가장 위선적인 인물인 삼대 중 2대인 조상훈과, 20대 초반에 이제 막 고등학교를 마칠 때가 되었지만 갑작스런 조부의 사망으로 거대한 부를 아버지를 대신해서 받게 되고, 우유부단하고 아버지가 자신의 친구인 홍경애를 임신시키고 모른척 하는 것을 혐오하면서도 그를 감싸며 결국은 아버지처럼 자신의 친구의 하숙집 딸에게 접근하여 ‘아내보다도 더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그녀’라고 생각하는 손자 조덕기의 사실 약간 혐오스런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혐오감은 실제 식민지 시대에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할 정부가 없는 그 사회에, 위선과 사기, 공갈과 갈취등이 팽배하고 그것이 종교, 사상, 감정, 생활등을 막론하고 하나의 그리고 거대한 삶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던 사회를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조부의 히스테릭적인 반응과 고리타분한 사고방식, 그리고 본처가 죽고 젊은 첩을 맞아들이는 행위, 부친 조상훈의 가장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인간 말종의 행태, 조덕기의 우유부단함과 결국 보고 배운대로 행동하는 그의 행위, 조부의 첩인 수원댁의 자신의 남편에 대한 독살과 재산에 대한 탐욕, 수원댁과 결탁한 매당의 수양딸이자 조부의 재산과 부친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부친의 두번째 첩 의경, 부친의 첫 첩이자 독립투사의 딸인 홍경애, 그리고 독립운동을 한다며 친구인 덕기에게 시도때도 없이 돈을 요구하고 투쟁자금을 받아서 반찬가게를 차리고 홍경애와 연애를 하지만 돈의 행방에 들통나자 같은 독립운동을 하는 동료에게 다 뒤집어 씌우고 사색적인 척하지만 사실 그냥 힘없고 독립운동이라는 이름을 이용하는 위선자인 김병화. 딸을 조상훈의 첩으로 은근히 만들어 한몫을 챙기려고 했고 그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홍경애의 모친. 이런 이런 상황을 일부 해결해 주기도 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하는 일본 경찰들. 당시 사회가 얼마나 체계도 없고 보호도 없으며 정말 각자도생으로 누가 누구를 먼저 그리고 잘 등쳐먹는지가 '잘 사는' 척도가 되어 있던 그런 실제 사회의 소설이라고 봐야 할 듯 하다.
처음에 읽으면서 이런 위선으로 가득한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를 굳이 왜 읽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이후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는 콩가루 사회의 이야기로 번진다. 영화나 막연하게 대충 알기만 했던, 식민지 시대의 혼란한 사회에 갑자기 떨어져서, '아니, 뭐 이런 시대말같은 세상이 있나'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사실 조선시대나 해방 후 시대의 소설은 읽어봤어도, 식민지 시대의 생활상은 <토지>나 독립운동과 같은 영웅적인 내용들만 알고 있었던 내 기억에, 세상은 그렇게 멋지고 영웅적이지 않았고, 사실 난잡하고 추악했으며 그렇게 무정부적인 사회에서 악인과 선인이 구분되지 않고, 누가 더 남의 것을 뺏어먹나가 삶의 방식이 되어, 종교이니 사상, 교육등도 결국은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의 도구로 전락되었던 사회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소설은 해결도 되지 않고 감동도 주지 않고 여운도 주지 않으며, 먹다 떨어뜨린 떫떠름한 음식처럼 끝이 난다. 등장인물과 소설의 공간적인 배경이 한정적이며 사용된 단어들이 생소한 것들이 많아서 글의 일부만 떼어놓고 문제를 내기 쉽기에 그렇게 수능문제와 모의고사 문제로 많이 나왔던 것인가 싶기도 하다. 재밌게 읽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재미 없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식민지 시대는 내가 상상하던 그런 멋지고 낭만적이며 드라마 속의 세상이 아니라며 뺨을 맞은 듯한 느낌이다. 또한 그 유명한 <삼대>를 나도 읽어보았다는 것에 만족하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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