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차 한국에 갔다가 아버지가 추천하면서 주신 책이었다. <채식주의자> 이후 5년만에 읽는 한강 작가의 소설이다.
채식주의자 - 한강
한강의 를 읽게 된 계기는 좀 어의없는데, 조정래 작가의 소설인 과 작가 이름 '한강'을 헷갈렸던 것이다. '어 이게 그 '한강'인가'라는 생각으로 집어 들었던 책이고, 첫 페이지를 읽고 재미있을
rootahn-book.tistory.com
여느 책처럼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은지 얼마되지 않아, '상무관', '추모식', '애국가'라는 단어들이 나와서 이 책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배경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지난번 황석영 작가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을 때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터라 이번에도 쉽지 않겠구나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황석영
책장 속에서 오랜동안 그 세월의 흔적으로 빛바랜 표지의 색처럼,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어서 아직도 정면으로 그 장면을 마주할 수 없어, 머리를 땅에 박아 놓고 사태가 진정되기
rootahn-book.tistory.com
당시 광주의 그 사건 속에서 끔찍한 일들을 당했던 어린 학생들. 동호라는 중학생과 그 친구 정대, 정대의 누나이자 정대와 같이 동호의 집에 사긁방에 사는 정미 누나, 상무대에서 같이 시신을 수습하던 선주 누나, 은숙 누나 그리고 진수 형, 그리고 동호의 엄마와 동호가 다니던 학교의 담임선생님의 아들이 해주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시간과 상관없이 5.18당시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다시 한번 뒤살펴본다. 시간 순으로 본다면, 전두환의 독재와 유신정치에 반대하는 데모들이 일어나자 단지 돈을 벌어서 동생을 키우고 학교를 보내려고 했던 정미는 그들의 창검에 맞아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돌아오지 않는 정미를 찾아다디던 동생 정대와 동호는 5.18운동이 시작되던 그 광장에 같이 나갔다가 정대는 옥상에서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죽는다. 친구가 바로 앞에서 꿈틀거리며 죽는 것을 숨어서 지켜봐야 했던 동호는 그 사실을 스스로 부인하면서 상무대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일을 도와준다. 여기서 같이 일을 하던 은숙누나와 선주 누나 그리고 진수 형을 만난다. 이제 겨우 10대 후반이나 대학생이 된 이들은 사망자가 계속 늘며 상황이 악화되고 계엄군이 진군할 마지막날 서로의 운명대로 헤어진다. 중학생인 동호는 나이가 어려서 돌아가라는 말과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뒤로한채 결국 그날밤 광주 전남도청에 남는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동호가 남는 것을 본 은숙은 그를 말려보지만 결국 동료와 근처 병원에 숨어서 그날 밤을 보낸다. 진수는 동호가 남았다는 것을 보고 상황을 보고 상황이 안 좋아지면 두손을 들고 꼭 항복해서 목숨을 부지하라고 충고한다. 결국 동호와 어린 학생들은 계엄군이 시청을 제압할 때 숨어있다가 항복을 하면서 나오지만 그 자리에서 계엄군에 의해 바로 총살을 당한다. 군인에게 총을 쏠 수가 없어서 총 한번 쏘지 못하고 잡힌 진수와 그의 동료들은 갖은 (성)고문을 당하면서 인간성을 파괴당한다. 역시 당시 도청에 남아있던 선주 누나도 잡혀서 (성)고문을 당하여 평생 불임으로 살게 된다. 그날 동호에게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았던 선주와 항복하라고 충고했던 진수는 남은 여생을 죄책감 속에서 지내게 된다. 도망갔던 은숙은 이후에 수색시 잡혀서 폭행을 당하고 그녀 또한 그때 동호를 데려오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때 왜 저녁 때 돌아올 것이라는 막내 아들 동호의 말만 믿고 집으로 가버렸는지 매일매일을 후회하며 사는 동호의 엄마의 회상은 가장 읽기 힘든 부분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끔찍한 악몽이어서 온 힘을 써서 잊고 싶은 과거이고, 어떤 이들은 힘들지만 절대 잊으면 안되는 사건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삶보다도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택한다. 어떤이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들이 이 사건을 잊어버렸으면 하기에 이는 사실이 아닌 선동이며 존재하지 않는 과거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를 직접 겪지도 않았고 배우지도 못했으며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거나 읽지도 않은 많은 사람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2024년 12월은 이 아픈 과거를 잊으면 안된다는 것을 또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다시 그 끔찍했던 역사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으로 추악한 자신의 모습들을 숨기며 우리 사회에 깊숙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학살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 그 학살 속에서 친구, 동료, 동생, 자식을 구해내지 못하고 겨우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은 삶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비극이자 부끄럽고 추악한 면이지 않은가. 살아남은 그리고 그 사회 속에서 더이상 계엄군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모두는 그때 용감하게 그리고 안타깝게 스러져갔던 모든 사람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이 있다.
읽다가 자꾸만 시야가 묽어지지만 가슴에는 분노가 차오르는 그런 멋진 책이다.
'소설 > 한국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외인간 - 이외수 (21) | 2024.10.12 |
---|---|
하얼빈 - 김훈 (0) | 2023.12.20 |
무진기행 - 김승옥 (2) | 2023.10.10 |
도둑맞은 가난 - 박완서 (1) | 2023.06.04 |
28 - 정유정 (0) | 2019.08.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