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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한국 소설

도둑맞은 가난 - 박완서

by YK Ahn 2023.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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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을 헌책방에서 찾았다. 비록 청소년판이긴 하지만, 설마 내용을 바꾸진 않았을 것이고, 박완서 작가의 다른 소설들 중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하는 것들을 묶어서 내면서 청소년판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는 <도둑맞은 가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겨울 나들이>,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아저씨의 훈장>,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해산바가지> 등의 소설들이 한권에 묶여 있다. 

 책의 제목이자 첫 소설인 <도둑맞은 가난>은, 잘 나가던 집이 하루아침에 풍지박산나며 부자에서 빈민층으로 떨어진 신세와 희망 없음을 못 견디고 일가족이 자살한 가운데 혼자 살아남아  하루 하루를 힘겹게 하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며, 자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쉽게 삶을 포기한 부모에게 자랑이자 반항인 주인공에게 다가온 사랑이 사실은 자신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가난을 '체험'하기 위해서 몰래 잠입한 부자였음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가난 속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넘어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치열하게 사는 삶이 부자들에게는 한가지 체험정도로 밖에 되지 않으며, 그렇게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결국은 그녀의 부모와 남동생의 생을 앗아간 가난이 그들에게는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경험'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그녀는 좌절하며, 이제는 '가난까지도 도둑맞았다'라며 비열한 삶에 냉소도 아닌 절망을 내비친다. 

 다른 소설들에서도 박완서 작가의 느낌이 굉장히 잘 살아나는데, 읽다보면 '아, 이게 박완서 작가의 스타일이구나'라고 느껴진다. 삶의 한순간 속에서 느껴지는 비통함과 착잡함, 그리고 다시 무뚝뚝하게 벌떡 일어서서 다시 갈 길을 가는 그런 느낌의 소설들이다. 

 어느 순간, 소설 속 이야기의 중간에 아무 설명도 없이 무심코 내던져서는 하릴없이 소설 속 사람들을 바로 옆에서 쫓아다니며 바라보며, 나중에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왜 소설 속 주인공이 저런 말과 저런 행동들을 했는지 깨닫게 되며, 그런 삶 속에서도 우린 어떻게든 다시 알맞은 답을 찾고 서로를 이해하며 잘 살거야라는 결론을 내리면 다시 소설 밖으로 쭉 빨려나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도둑맞은 가난> 도 좋지만 <해산바가지>가 더 거센 감정의 물결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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