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 김승옥

 오래간만에 읽는 한국 근현대 소설일 듯 하다. 어느날 문뜩 예전에 읽었던, 짙은 안개가 껴서 몽환적이고 음습한 분위기의 소설이 생각이 났는데, 어떤 소설이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찾다가 다시 읽게 된 책이다. 비록 찾던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흥미있게 읽은 책이다.
 책 제목은 무진기행이지만, [무진기행] 외에도 [서울 1964년 겨울], [생명연습], [건], [역사], [차나 한 잔], [다산성], [염소는 힘이 세다], [야행], [서울이 달빛 0장] 등 김승옥 작가의 단편 소설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들 단편 소설이라 줄거리를 요약하면 사실 소설의 전체 내용이 될 듯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60-80년대 한국소설은 거칠고 난폭하다. 소설의 내용과 표현 등이 전투적이다. 작가마다 모두 독특한 개성들이 있지만, 국가들마다도 그 특징들이 있는 것 같다. 그 중 한국 소설은 사변적이라고 해야 할까, 사념적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머리속을 그대로 옮기려고 하는 말들과 생각이 굉장히 많은 듯 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소설들에는 종종 사물적으로 관념화된 여성이 사건의 중심에 있으며, 그들과의 갈등, 노골적인 사냥꾼 혹은 포식자로서의 시선이 소설 속 남성에게서 여과없이 표출된다.  아마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로부터 받는 갈등과 스트레스가 가장 약한 동물이라고 자의적으로 인정하고 타의적으로 인정된 여자에게로 혹은 여자로부터 해소되는 구조가 당시 사회에 뿌리깊게 내려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당시 실제 사회가 난폭하고 거칠며 여성이 대상화되어 있던 시절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