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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유럽 소설

인생의 베일(The painted veil) -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

by YK Ahn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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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선가 책에 대해서 얘기할 때 잠깐 언급된 적이 있었던 책인데, 지난번에 한국에 갔었을 때 중고 서점에서 보이길래 구매하여 읽게 되었다. 영국이 아편전쟁으로 중국의 홍콩을 점유하던 시기에, 남편을 따라 홍콩으로 건너온 키티라는, 이 허영심 많고 속물이며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키티는 더 높은 신분이나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 여성으로서 혹은 딸로서 최고의 성공으로 여기는 어머니 밑에서 스스로도 그렇게 속물적이게 자라게 된다. 예쁘장한 얼굴에 흰 피부로 어린 나이에는 많은 남자들의 청혼을 받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여 계속 퇴짜를 놓다가 혼기를 놓치고 결국 자기보다 '못생긴' 동생이 더 잘난 결혼을 자기보다 더 빨리 하는 것이 보기 싫어 홍콩에서 세균학자로 일하다가 휴가차 영국에 방문하여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월터와 급하게 결혼 후, 홍콩으로 떠나 버린다. 사랑은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고 조건을 만족시키는 결혼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홍콩에서 만난 찰스라는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른다. 이들의 불륜은 더더욱 대담해져서 결국 그녀의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남편인 월터에게 완전히 발각되고, 월터는 그녀의 찰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허무맹랑하며 찰스가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 깨닫게 한 후, 중국 남부에 콜레라가 창궐하는 지역으로 같이 가자고 한다. 
 콜레라로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곳에서, 청승떨며 지내던 그녀는 남편과 같이 콜레라와 싸워가고 있던 수녀원에 방문하며 자신의 삶이 얼마나 의미없었는지 깨우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찰스와의 관계에서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의미와, 남편 월터와 찰스에 대한 시선이 다시 고쳐지고 뭔가를 깨닫기 시작할 무렵, 월터가 콜레라에 걸려 (아마 스스로에게 실험을 하여) 급사하게 된다. 
 수녀들에 의해서 다시 홍콩으로 '반송'된 키티는 찰스의 부인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그들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가 뭔가를 깨우쳤다고 생각한 키티였지만, 찰스와 단둘이 있게 되자 다시 찰스의 품에 안기며 다시한번 불륜을 저지른다. 이후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영국으로 급하게 돌아가던 중, 어머니의 부고를 듣는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게 원하고 닥달하던 아버지가 미국에서 결국 그  지역판사 자리를 얻게 되어 떠나게 되자, 아버지에게 자신도 데려가 줄 것을 부탁한다. 
 최근 수년간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주인공에게 환멸을 느낀 소설이 아닌가 싶다. 서평이나 리뷰에서는 주인공 키티가 전염병이 창궐하는 도시 한복판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환골탈퇴하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간다고 하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리뷰들이다. 그녀는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허약하고 청승맞고 속물이며 이기적이고 오직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같은 상황 속에서, 사실상 그녀가 남편을 죽였다. 찰스의 아기를 임신하고도, 그렇게도 아기를 바라던 월터에게는 (그의 아기라고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터의 아기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해서 그를 다시한번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찰스에게는 복수한답시고 그의 아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중적인 자세. 그러면서 그녀를 극진히 대해준 찰스의 부인이 없는 틈에 다시 한번 그와 불륜을 저지르는 행위는 그녀가 그럴듯한 독백뿐이고 머리속에 공상만 더 차게 되었을 뿐이지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다. 변한것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환멸과 찰스가 절대로 이혼하지 않고 자기가 홍콩에서 계속 찰스와 이렇게 지낸다면 얻을게 전혀 없다는 패닉에서 영국으로 급하게 도망칠 수 있는 정도의 계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영국에서도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거나 발전할 의욕은 없고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는 아버지에게 기생을 부탁하는 자세는 너무나도 완벽한 '키티'같은 모습이다. 
 어떻게 이렇게 1차원적인 인물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했는데, 이는 아마도 작가가 서문에서 설명한 이 소설의 탄생 배경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 서머싯 몸은 자기의 모든 소설들은 항상 인물들을 먼저 만든 후, 이 인물들에 의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만 이 <인생의 베일>은 스토리가 먼저 생각나서 그 스토리에 맞는 인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상하자면, 속물의 영국 여자가 홍콩으로 가서 불륜을 저지르고 발각되어 전염병이 창궐하는 지역에서 남편을 잃은 후,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다시 불륜을 저지르고 영국으로 돌아간다는 스토리에, 다채롭고 3차원적인 인물상이 그려질 수는 없을 듯 하다. 
 소설은 굉장히 재밌고 월터의 삶이 안타깝지만, 공포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인물의 입장에서 주변을 본 느낌이다. 
 '죽은 것은 개였‘다니...월터의 마지막 말은 더욱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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