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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시아 소설

허삼관 매혈기(許三觀賣血記) - 위화(余華)

by YK Ahn 202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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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간만에 읽는 중국 소설이다. 알라딘 서점에 들렀을 때, 눈에 띄어서 산 책이다. 허삼관이라는 중국 근현대 시대의 노동자가 삶의 고비 때마다 피를 팔아서 역경을 헤쳐나가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느낌은 한국의 근대 소설을 읽는 듯 한 느낌인데, 아마 중국의 근대사와 한국의 근대사가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는데다가 두나라의 문화도 비슷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성안의 누에고치 공장에서 종사하는 허삼관은 어릴 때, 자기를 키워주던 삼촌에게서 '피를 팔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이고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는 남자로서의 구실을 못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피를 팔러 병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피를 판다는 것은 단순히 건강하다는 증거로서가 아니라 당시 농민이나 노동자로서는 모으기 힘든 돈을 습득하는 기회이기도 한데, 이 때문에 피를 파는 행위는 '힘을 팔고', '온기를 팔고', 심지어 '목숨의 일부를 파는' 것이기도 하다. 피를 판 돈으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중국의 대흉년 시기에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위해 피를 팔며, 자기를 '자라 대가리' 짓을 하게 했다고 매섭게 대했던 첫째 아들이 사고 친 것을 갚기 위해 피를 팔고, 문화혁명시기 농촌의 일터에서 고생하는 첫째와 둘째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피를 피고, 둘째 아들의 상관을 대접하기 위해 한달도 안되어 또 피를 팔았다. 간염으로 상하이 병원으로 후송되어 입원 중인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주일만에 4번의 피를 팔아 저혈압으로 쓰러지기까지 한 허삼관은, 아들들이 모두 결혼하고 직장을 가져 삶을 만족을 느끼다가, 이제까지 자신을 위해서는 한번도 피를 팔아본 적이 없음을 깨닫고, 돼지간볶음 한접시와 황주 두냥어치를 마시기 위해 피를 뽑으려고 했으나 자신은 이미 너무 늙어서 피를 팔수도 없다는 말을 듣고 서러움에 울지만, 아내가 그를 달래며 돼지간볶음 3접시와 황주를 병째로 주문하면서 그의 매혈기는 끝난다. 
 허삼관은 처음에는 무식하고 약간은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어느샌가 너무나도 인간적이며 측은한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착한 본 모습을 보여준다. '자라 대가리' 짓을 했다고 내쫓은 첫째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거리를 헤매며 겨우 찾은 후, 피를 팔아 국수를 사주는 모습, 첫째 아들에게 친아버지의 영혼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친부 집 지붕에서 곡을 하게끔 부탁하는 모습, 둘째 아들의 상관을 대접하기 위해 피를 연속으로 팔려고 병원에서 연신 부탁하는 모습은 서럽고 슬프다. 울고 부탁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상하이의 병원으로 가는 장면은 제발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을 느끼게끔 하기도 한다. 
 우물 물 여덟사발을 마셔도 묽어지지 않을 피같은 끈적함의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으로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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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식들아, 너희들 양심은 개한테 갖다 줬냐? 아버지를 그렇게 말하다니, 너희 아버지는 피 팔아 번 돈을 전부 너희를 위해서 썼는데, 너희 삼형제는 아버지가 피를 팔아 키웠다 이 말이다. 생각들 좀 해 봐라. 흉년 든 그 해에 집에서 매일같이 옥수수죽만 먹었을 때, 너희들 얼굴에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어서 아버지가 피를 팔아 국수를 사주셨잖니. 이젠 완전히 잊어버렸구나. 그리고 너 이락이, 네가 생산대 갔을 때 너희 대장한테 너 좀 잘 부탁한다고 아버지가 피를 두 번이나 팔아서 밥 먹이고 선물까지 사주고 그랬는데, 너 아주 까맣게 잊었구나. 일락이 너도 그럴 줄은 몰랐다. 네가 아버지를 두고 그렇게 말하다니, 참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너한테 아버지가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사실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너한테는 다른 어떤 아들한테보다 잘해주셨을게다. 네가 상하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집안에 돈이 없어서 아버지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피를 파셨지 않니, 한 번 팔면 석 달은 쉬어야 하는데, 너 살리려고 자기 목숨은 신경도 스지 않고, 사흘 걸러 다샛 걸러 한번씩 피를 파셨단 말이다. 쑹린에서는 돌아가실 뻔도 했는데, 일락이 네거 그 일을 잊어버리다니....., 이 자식들아, 너희들 양심은 개새기가 물어갔다더냐, 이놈들...." 
 허옥락은 한바탕 독설을 퍼붓고는 허삼관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보, 갑시다. 우리 돼지간볶음 먹으로 가자구요. 황주도 마시구요. 이젠 가진게 돈뿐인데 뭘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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