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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철학

성찰 -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by YK Ahn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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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은 후, 5년만에야 겨우 <성찰>을 읽게 되었다. 책의 이름은 <성찰>이지만, 원서의 제목은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이며, 책에는 그 외에도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탐구>와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이 같이 수록되어 있다.

 

방법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 -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지난 겨울에 알라딘 서점을 뒤적이다가 그냥 눈에 띄어서 산 책이었다. 원래 읽고 싶던 책은 데카르트의 이지만, 그리고 그 책도 샀지만, 왠지 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어

rootahn-book.tistory.com

 서양 근대철학의 대가이자, 중고등학교 정규교육과정을 배운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을 듯 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철학자이다.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은 총 6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 1성찰: 의심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제 2성찰: 인간 정신의 본성에 관하여; 정신이 물체보다 더 쉽게 인식된다는 것

제 3성찰: 신에 관하여; 그가 현존한다는 것

제 4성찰: 참과 거짓에 관하여

제 5성찰: 물직적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그리고 다시 신이 현존하다는 것에 관하여

제 6성찰: 물질적 사물의 현존 및 정신과 물체의 실재적 상이성에 관하여

 

 사실 1성찰을 제외하고는 딱히 흥미롭지는 않다. 당시 유럽에 종교의 힘이 막강해서였던 것인지 데카르트는 자꾸 신의 현존에 대해서 증명하려고 하는데, 이는 안타깝게도 자신의 기존 논리에 계속되는 흠집을 만들고 이후에는 정말 궤변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의 논리를 펴서 어이없는 웃음을 주기도 한다. 400년정도의 전에 쓰여진 책이다보니, 책을 읽다보면 그 동안 정말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물리학, 생물학, 뇌과학, 정신분석학과, 의학 그리고 진화의 발견들은 데카르트의 많은 주장에 많은 반론을 던진다. 특히 <성찰>이 나온 후 200년 후에 나온 리만 기하학이나 20세기에 발견된 양자역학과 정신분석학, 21세기에 급격한 진보를 보이고 있는 생물학등은 데카르트가 제시했던 증거들의 반증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의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에서 핵심은 역시 제 1성찰에서 나오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이다. 사실 와전히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완전하게 진실로 판명되지 않은 것은 모두 의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후에 이 완전히 진실로 판명된 것이라는 단서는 아마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 넣어 놓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논리에 심각한 취약점을 만들어 버렸다.

 그는 자신의 모든 감각이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현재처럼 이렇게 사유하고 있는 동안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진실이다'라고 한다. 데카르트는 왠지 그보다 2,000년 전에 중국의 장자가 얘기했던 '나비의 꿈'과 같은 얘기를 하며 이와 같은 의구심의 시작이 어디였는지 말하는게 아닌가 싶다. 제 1성찰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가 위와 같은 모든 것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때,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자신의 현존을 부정할 수 있느냐 하며, 반론에 대해서 '미치광이'로 몰아가면서 미치광이에 대해서 비난의 시선을 그대로 들어낸다. 사실 뇌과학과 정신분석학이 발달한 현대에서는 과학적으로도 반론이 가능한 얘기이겠지만, 이러한 과학의 발전이 있기 전이었던 그의 시대에는 이러한 비판이나 반론에 대해서 '미치광이'라는 비난으로 덮어버렸다.

 개인적으로 철학책들이 읽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정의들이 자세하고 명백한 정의없이 만들어지고 이 새로운 개념들이 그들의 철학에 있어서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 <성찰>에도 표상적 존재이니, 형상적 존재이니, 스스로 만든 관념과 밖에서 들어온 관념, 비결정성, 자연적 의지 등 단어만 들었을 때는 이해가 명확하게 되지 않는 개념들을 핵심으로 사용한다. 

 그의 논리는 제 3성찰부터 신의 존재에 대해서 '증명'하려고 하면서부터 완전히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어떤 사물을 속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즉 내가 돌을 생각해서 머리속에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돌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라는 갑자기 궤변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논리를 펴간다. 자신이 제1성찰에서 말한 모든 것을 의심한 후 얻은 명확한 한가지 진실인 '나는 사유할 때는 명백히 존재한다'는 사실상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인데, 신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성서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는 '신이 존재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것은 이미 여러가지 방법으로 증명되었다'라며 모든 것은 의심하지만 신의 존재는 의심하지 않는다라며, 그의 철학에 너무 큰 오점을 남긴게 아닌가 싶다. 아마 그래서 그의 철학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만 남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는 원래 <건전한 사람이 그 생각에 떠오르는 모든 것에 대해 가져야 하는 의견을 종교나 철학의 도움 없이 순전히 그 스스로 규정해 주고, 기이한 학문의 비밀 속으로 침투하는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라는 긴 문장의 제목이라고 한다. 이 글은 교육을 받지 못한 폴리안데르와 당시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에피스테몬, 그리고 데카르트 자신를 대변하는 에우도수소 라는 세명의 가상 인물의 대화 형식의 글이다. 데카르트는 이 글에서도 당시 대학교육이나 권위자에 의한 지식에 대한 적대감이나 실망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계속해서 이를 선입관과 편견, 권위에 의해 강제로 주입된 잘못된 지식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철학 방법인 완전히 명석판명한 것이 나올 때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사고한다면 이러한 기존의 교육제도 밖에서도 그보다 더 높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대화내용은 결국 '사고할 때만 내가 존재한다'라는 것을 폴리안데르가 깨달으면서 정말 대충 마무리된다.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도 원래는 <1647년 말에 네덜란드에서 인쇄된, [인간 정신 혹은 이성적 영혼이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라는 제목이 달린 어떤 프로그램에 대한 주석>이라는 제목이라고 한다. 내용은 데카르트 자신의 철학적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프로그램' 형식의 글에 대한 반론인데, 처음에 조금 읽다가 재미없어서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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