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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과학/생물학 & 생명과학

동물과의 대화(Animals in Translation)-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캐서린 존슨(Catherine)

by YK Ahn 2026.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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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 댁의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슬쩍 가져와 읽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책인데, 이런 책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지 궁금해서 읽어본 것이었다.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동물과의 대화>라는 감성적이고 양방향적인 제목이지만, 원서는 <Animals in translation>으로 조금 더 딱딱한 교육적(?)이며 번역이라는 일방적인 느낌이다.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인해 번역이나 통역시 사라지는 미묘한 느낌이나 의미를 의미하는 이 문구를 오마주하여, '내가 동물들을 통역 혹은 번역해 주겠다'라는 꽤 당돌한 의미인 듯 하다. 

 
 책의 저자는 자폐스펙트럼은 대뇌 전두엽의 신피질의 연결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전두엽이 인간처럼 잘 발달하지 못한 동물들과 비슷할 것이기에,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얘기한다.  그런데 저자가 들은 예시들이 매우 개인적인 일회적 경험들이어서, 한두마리의 동물에 대한 자신의 직감을 너무 일반화시키거나 사실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앞에 말한 자신이 자폐스펙트럼이 있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자신이 동물 생각이나 느낌을 더 잘 인식하고 정확하게 동물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자기순환논리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즉, 자신과 같은 자폐인은 신피질의 연결에 문제가 생겼고, 동물들은 인간과 같이 신피질이 잘 발달하지 않았기에 자폐인이 자신이 동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이 하는 행동이나 동물이 받는 느낌을 자신이 더 잘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자신은 자폐인이기 때문이라는 순환논리인 것이다. 

 저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책이 쓰여졌던 20년전(2005년)에는 동물들을 인식과 감정이 있는 주체가 아닌 인식과 감정이 없는 기계적인 존재로 보는 시선이 주류였는데, 이런 시선과 관점을 깨고 동물들도 인관과 비슷한 인신과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생물 교과서에서 보았던 파블로 개의 실험에서처럼, 당시 학계나 사람들은 동물은 감정과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기계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봤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시 팽배하던 이런 기계론적 행동주의 사고에 경종을 울렸던 것이다.  결국 그녀와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지금의 우리 사회는 동물들도 개별의 생각과 성격을 가지며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강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녀의 글쓰기 방식이 그녀가 말하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생각하는 자폐인의 특징 때문인지, 글의 주제나 소재가 얌체공마냥 통통 튀어서 글을 읽는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순환논리라는 논리적인 문제도 있지만, 과학적으로도 맞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대뇌 그리고 신피질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는 진화방식을 선택하게 압력이 가해진 것이고, 동물을 그냥 그 방향으로 진화의 압력이 가해지지 않은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동물의 덜 발달된 신피질을 인간보다 진화가 덜 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진화를 한쪽 방향으로 가는 '발전'과 구분하지 못하는, 진화에 대한 오역인 것이다. 게다가 자폐인에게 발견되는 신피질의 이상은 해부학적인 이상이고, 동물들은 진화적 결과인데, 이를 단순히 겉모습만 보고 동일하다가 혹은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은 바퀴가 모두 빠진 차가 배와 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사고는 동물을 인간보다 못한 존재 혹은 진화가 덜 된 존재로 생각하게 만드는 잘못된 주장이기도 하다. 그녀가 동물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동물들의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하였고, 스스로가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른 자폐인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동물도 인간과 그냥 조금 다른 생물일 것이다라고 보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는 사실 좀 오래되고 폐기된 이론을 아직 사용하고 있기는 하다. 사람의 뇌를 세 부분으로 파충류의 뇌-포유류의 뇌-인간의 뇌로 나누면서 해부학적으로 파충류의 뇌가 먼저 생기고 그 다음 포유류의 뇌 그리고 마지막에 인간의 뇌인 대뇌피질이 생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진화를 나무 뿌리에서 여러가지고 퍼져나가는 모양으로 보지 않고 사다리처럼 한방향으로 발전하는 방향으로 보는 방식이다. 이는 과학계에서도 잘 못된 해석이라고 이미 알려진 것을 책의 앞부분에 논리의 핵심으로 넣는 것이 특이하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책이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는 않았는데, 여기에는 저자 특유의 문체와 번역의 한계가 같이 섞인 듯 하였다. 저자가 자폐인이라서 그런지, 동일한 문장이나 의미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글의 흐름이 통통튀는 듯한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서 한 문장안에서 혹은 한 문단 안에서도 통통 튀어 갑자기 쌩뚱맞은 얘기를 하거나 결론을 내기도 하기에,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가 꽤 많았다. 반면 번역의 질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영어 문장 구조를 그대로 직역하거나 한국어 어순으로 변환해서 읽기 쉽게 만들지 않고 영어식으로 그대로 써 놓았기에 문장들이 생각보다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처음에는 내 문해력에 문제가 있나 싶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언젠가 동물에게 있어 활발한 신체활동을 이끄는 두뇌 기능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놀이라는 사실을 아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다'라는 문장은 얼핏보면 그럴 듯 하지만, 뜯어보면 무엇인가 이상하다. '동물의 활발한 신체활동을 이끄는 두뇌 기능을 "증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놀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 하지만, 중간에 매개체와 명사의 오사용으로 '활발한 신체 활동을 이끄는 두뇌 기능'=놀이라는 수단' 이라는 이상한 논리구조가 되는 것이다. 
 또다른 예로 '만일 데이브가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의 개를 가지고 있다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다른 한 마리에 비해 그라운드호그를 사냥해서 죽이는데 보다 동기 부여를 한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가 있다. 이 문장에는 개가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한다는 한국어로 이상한 문장인데, 이는 한국어에서는 동기는 스스로 부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를 부여받는 것이지 때문이다. 
또한 동물들을 지칭할 때, '이놈', '이놈들'이라는 표현을 번역판에서 썼는데, 동물들과 같은 시선에서 보려고 했던 저자의 의지를 이 하급대상화해버리는 큰 실수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단어가 나오면 책을 읽을 때 사실 놀라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책이 매우 재밌었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독특하기는 하였다. 그리고 동물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것도 있지만 오히려 자폐인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것도 있는 것 같다.  책의 초반에 그녀가 도축장의 도축장비를 개발하고 도축장을 검사하며 조언하는 사실이, 그녀가 책에서 말하는 동물을 이해하려는 것과 동물들도 인식과 생각 그리고 감정이 있다는 내용과 뭔가 잘 안맞는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설명을 해 놓았는데, 그녀는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인간이 진화를 해서 모두 채식으로 변하는 것이고 그녀도 채식으로 변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인간은 육식을 해야하고 그런 육식을 위해서 도축을 해야할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하려는 것은 도축을 당하는 동물이 도축을 당하기 전까지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도 덜 고통스럽고 더 자유롭고 더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에 이런 일을 하고 책을 쓰는 것이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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