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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과학/국제정치 & 국제관계

시빌라이제이션: 서양과 나머지 세계 (Civilization: The West and the Rest) - 니얼 퍼거선 (Niall Ferguson)

by YK Ahn 2024.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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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한국 출장 때 알라딘 서점에서 보여서 재밌어 보이길래 사놨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나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을 생각하면서 샀던 책인데, 저자도 이들의 책들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하였다. 또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도 저자한테 영향을 꽤 준 듯 하였다. 심지어 책의 서론인 '라셀라스의 의문'은 뉴기니의 친구가 던진 의문에서 시작하는 <총, 균, 쇠>와 너무나도 흡사하였다.

 

Guns, germs and steel (총, 균, 쇠) - Jared Diamond (재레드 다이아몬드)

자연과학책들을 읽다보면 이제까지 답을 찾지 못했던 궁금증들이 어느 순간 퍼즐 조각 맞추듯이 혹은 태엽이 딱 맞아들어가 논리가 제대로 돌아가듯이 '아! 그래서 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의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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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흥망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 폴 케네디 (Paul Kennedy)

예일(Yale)대학교의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Paul Kennedy)가 1987년에 저술한 책으로 1500년대부터 1900년 말까지 세계 강대국들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평범한 국가로 전락하게 되는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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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어떻게 1500년대까지 지구에서 변방이었던 유럽과 서양문명이 이후 500년이 넘는 기간동안 나머지 세계를 집어삼키고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서양문명만 가진 6가지 요소 - 경쟁, 과학, 재산권, 의학, 소비, 직업- 덕분에 이런 급진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1장 경쟁. 여기에서 서양은 유럽을 얘기한다. 당시 거대 통일왕조를 이룩하고 있던 중국과 그런 중국에게 조공을 보내는 주변의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던 아시아에 비해서 서양은 작은 나라들이 지속적인 전투와 끊임없는 상호 경쟁을 하는 곳이었으며 이를 통해 유럽의 나라들은 여러분야에서 빠른 발전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총, 균, 쇠>에서 왜 유럽이 아시아와 아메리카 국가들보다 무기와 사회체계의 빠른 발전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과 차이가 거의 없다. 
 
 2장 과학. 여기서도 서양은 유럽 국가들을 지칭한다. 당시 유럽은 중국이나 이슬람 국가들과는 다르게 과학을 장려하였는데, 이를통해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이루어냈다는 내용이다. 중국이나 이슬람 국가들도 이전까지는 과학 부분에서 오히려 유럽의 국가들보다 앞서고 있었지만, 중국은 청나라의 절대왕권시대가 지속되면서 그 자만이 과학에 대해서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반면 이슬람도 고대에는 과학이 발전하고 서양의 과학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종교가 사회를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과학에 대한 탐구를 금지해버려 서양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3장 재산권. 이곳에서 서양은 북아메리카로 넘어간 영국과 그곳에서 개국한 미국을 말하지만 남아메리카로 넘어간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서양으로 치지 않는다. 사실 이때부터 이 책에 대한 흥미가 굉장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북아메리카로 넘어간 영국인과 그곳에서 생겨난 미국인들에게는 소유재산에 대한 보호라는 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있었던 반면, 남아메리카로 넘어간 이베리아 반도의 유럽인들은 그런 개념이 약하여, 결국에는 남아메리카에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아닌 어정쩡한 나라들만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북아메리카로 넘어간 영국인은 대부분 영국에서 노동자이거나 하층민이어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 후 이곳에서 재산을 형성하기 위해 간 것이라 토지에 대한 재산권의 요구가 강했던 반면, 남아메리카로 간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귀족이거나 부자였으며 그들이 원했던 것은 토지에 대한 재산권보다는 원주민들의 노동력이 더 필요했던 것이고도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남아메리카에서 스페인들이 잉카제국과 원주민들은 '학살'한 역사를 몇번이고 언급하지만 (하지만 비판하지는 않는다) 영국인이 그리고 미국인이 북아메리카에서 저지른 원주민들의 학살과 강제 이동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구적인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만든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기도 한다. 게다가 대항해시대의 스페인과 영국은 모두 서양이지만, 이후 강대국이 된 미국은 서양으로 치지만 많은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미국보다 덜 성공한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서양으로 치지 않는다. 또한 미국 인종의 주류는 백인이었지만, 남아메리카는 혼혈과 원주민이 더 많았기 때문에 영국과 유럽의 제도와 사상의 적용이 잘 되지 않았다는 식의 논리도 펴고 있다.
 
 4장 의학. 전세계를 고난의 시기로 집어넣고 수천만명의 사상자를 내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있지만 제국주의는 의학을 급속도로 발전시켰고 이로 인해 서양은 물론 전세계의 질병이 줄어들고 평균 수명이 들었다는 이상한 논리를 편다. 
 
 5장 소비. 소련이나 공산권 국가와 독재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인 유럽과 미국에 비해 처진 것은 소비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비가 생산을 끌어가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서양에서 일어났다는 얘기이다. 사실 이 논리에는 동의하지만, 산업혁명이 불러일으킨 많은 것들 중에서 너무 좋은 것들만 가져다가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저자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굉장히 불쾌하고 적대적인 시선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한다. 
 
 6장 직업. 이 장은 직업이라기 보다는 종교라고 제목을 붙이는게 맞을 듯 하다. 저자는 미국이 성공한 이유는 개신교의 근면과 절약정신이라고 말한다. 유럽 내에서도 부에 대해서 부정적인 가톨릭교를 믿는 남부 유럽이, 부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개신교를 믿는 북부 유럽과 미국보다 못사는 이유를 이 종교에서 찾는다. 또한 현재 유럽이 미국과는 다르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더이상 개신교를 믿지 않는 현재의 상황 때문이라고도 하며, 미국은 현재 이 근면성실과 소비라는 것을 합쳐진 개신교 덕분에 아직도 초강대국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와 같은 느낌으로 읽었던 책이지만, <문명의 충돌>이 세계를 몇가지의 문명들로 구분하는 페러다임을 제시하며 이 문명들간의 어떤 상호작용과 갈등들이 유발되었고 유발될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라면, 이 <시빌라이제이션>은 오직 '1500년 이후 유럽과 미국'만을 '문명'이라고 정의하는 오만함을 보인다. 또한 세계의 역사는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처럼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진화'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현재 서양의 '문명'이 인류역사상 최고의 상태이며 다른 국가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이를 모방하지만 그들의 특성상 완전히 '문명화'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굉장히 백인 중심의 제국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사실 그는 제국주의에 대해서 많은 학살과 부지기수로 목숨을 잃은 노예들은 안타깝지만 제국주의가 전세계에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사관의 저자로 보인다. 
 마지막에는 중국에서 미국이나 서양이 잘 나가는 이유를 기독교라고 정의했다며, 중국에서 기독교 열풍이 불고 있다는 이상한 얘기도 한다. 기대하고 읽었던 책이지만 반도 읽기 전에 실망하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굳이 이 책을 더 읽어야 하나 싶게 만든 용두사미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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