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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과학/정치 & 경제

Capitalism and Freedom (자본주의와 자유) - Milton Friedman (밀터 프리드먼)

by YK Ahn 2018.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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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의 책을 접한 것은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책을 읽다 보면 계속 꼬리를 물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재밌게 봤던 책 속에서 언급된 내용이나 책이 있으면 그 책을 다시 찾아 보게 되는 식으로 연결이 되지만 보통 긍정적인 언급이 있는 책을 찾게 되지 부정적인 내용이 있는 책은 잘 찾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만은 이제까지 읽었던 많은 사회/경제 비평 책에서 거의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사람인데, 특히 노암 촘스키의 책들이나 Shock doctrine이라는 책에서는 자본주의 내 모든 악의 근원처럼 나오기도 한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비판이라도 계속 언급이 되다보니 책의 내용과 프리드먼이 생각이 궁금하게 되어 읽어보게 된 책이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자본주의와 자유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필수불가결하며 그 진정한 자유를 위한 진정한 자본주의 사회란 무엇이며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라는 것에 대한 논설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고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였지만 이 책에서는 수학이나 경제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쓴 것은 아니고, 사회와 경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피력하는 논설이라고 설명하는게 더 적당할 것 같다.


 이 책에서 프리드만은 자유에 대한 정의와 그 자유를 얻기 위해 사회 및 정부의 역할등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이미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책을 더 많이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프리드만이란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의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너무 부정적인 견해가 담긴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 저자의 주장이나 설명에 대해서 잘 받아들이지는 못하였다. 특히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자본주의를 행하고 다시 완전한 자본주의를 얻기 위해서는 완전한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식의 자기 순환논리도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처음부터 자유에 대한 프리드만의 정의에 대해서 그다지 공감이 갔던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원하는 것이 '자유'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논지가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아마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내 생각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책을 계속 읽다보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정말 이렇게 순진하게 생각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재밌는 것은 밀턴 프리드만은 '위대한 케인즈' 경제학자를 순진하다고 비판하였다.), 순진함이 아니라면 부분적이지만 핵심이 되는 것들에 대해 고의적인 논리적 비약 및 압축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러한 느낌들 때문에 많은 사회/경제 비평가들이 프리드만을 싫어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노동 임금에 대해 프리드만은 강력하게 노조를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이게 자본주의의 신념인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노동 시장은 일종의 상품시장과 동일하여 공급과 소비에 의해 그 임금이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지 의도적인 정책이나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신념에 의해 임금이 유동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자본주의를 해치는 것이라고 한다. 고용인은 자신이 채용하기 원하는 자리의 임금을 제시할 자유가 있듯이 노동시장의 피고용인도 자신에게 맞는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언뜻보기에는 그럴듯한 논의이나, 이런 고용의 문제는 일반적인 상품 시장과 다르게 대체품이라는 것이 사람의 기본권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자와 소비자가 동등한 권력을 가지지 못하며, 더군다나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정보의 획득력조차도 자신의 (돈과 정치/사회적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이기 때문에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보유한 정보는 이미 비평등적이어서 이상적인 공급-소비 구조가 될 수가 없다. 이러한 것들은 이미 자본주의를 내걸었던 많은 국가에서, 심지어 미국에서도 끔찍하게 겪었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만이 정말 이렇게 순수하게 생각을 했던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단적인 예로, 1930년 미국의 대공황 시기 노동자와 소작농들의 삶이 어떻게 고용인들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많은 희생을 겪었는지를 그가 모를수가 있을까...


 임금에 대한 것 외에도, 프리드만은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 '자유 사회'에서의 정부의 역할, 돈에 대한 통제, 국제 금융 및 무역, 국가의 재정정책, 심지어 교육 및 자격(증)에 대한 정부의 역할 및 취해야 할 자세, 사회 분배정책, 복지, 빈곤 등 경제, 정치, 사회의 많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을 편다. 책에 나오는 내용들의 일부분은 나중에 프리드만의 시카고 학파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동유럽, 남아메리카 등에서 실제로 시도했던 것들이기도 한데, 그런 시도를 받았던 많은 국가와 사회에서는 대부분 경제/사회 문제가 악화되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굉장히 모순적이게도, 프리드만은 자본주의는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하며 진정한 자유를 위한 자본주의라고 하지만 글에서도 간간히 그의 진심이 나오기도 하듯이, 그가 정말로 원한 것은 '자유'가 아닌 '자본주의'인데, 실제로도 프리드만이나 시카고 학파의 자유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를 배척하고 독재자와 굉장히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서로간에 많은 교류가 있었다. 이는 프리드만의 자본주의는 대부분 매우 극단적인 내용들이어서 일반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책을 제대로 전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시카고 학파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제가 불안정한 이유는 민주주의 사회가 자본주의에 맞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역설하며, 진정한 자본주의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정치/사회에서는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에 독자재와 같이 극단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자유를 위해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 자본주의를 위해 다시 극단적인 정책이 필요하고 그 정책은 진정한 자유가 아닌 최소한 자유만을 보장하는 독재사회에서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언어도단인가...

 

 추가로 프리드만의 자유는 시장경제의 자유이지 우리가 정치적으로 말하는 자유가 아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행복할 자유가 있다'는 말의 일반적인 뜻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한다면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이겠지만, 프리드만에게는 '모든 사람이 경쟁을 해서 누군가는 행복할 수 있고 누군가는 불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라는 말이 된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사회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혹은 도태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지 모든 사람이 동등한 결과나 혹은 최소한의 보장된 결과를 갖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것이며, 최소한의 보장된 결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자유가 침해받았다는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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