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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시아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女のいない男たち)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 春樹)

by YK Ahn 2019.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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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1Q84] 이후 1년만에 다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다.  하루키의 소설들은 아무래도 읽기가 편하고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며, 이전에 손에 잡혔던 소설 모두 재미있게 읽었었기 때문에 아마 올해 초여름 한국에 잠깐 들어갔을 때, 서점에서 별 생각없이 '한번 읽어볼까'하면서 샀던 책인 듯 하다. 

 

 역시 하루키 소설답게 술술 읽히면서도 뭔가 몽환적인, 그렇다고 '몽환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그런 느낌의 책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책은 7가지 짧은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진 책인데, 이 7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왠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그렇다고 약하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뭔가 뒤에 거대한 투명한 막같은 연결 고리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 자궁암으로 죽은 아내가 바람핀 남자에게 '왜 아내가 자기 아닌 다른 남자와 잤는지', '무엇이 자기에게 부족한 것인지'를 찾기 위해 친구가 된 배우의 이야기이다. 결국 남편은 끝까지 그 '왜'에 대한 답변을 찾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에 커다란 의문과 구멍을 남긴 채로 멍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예스터데이>, 오랜동안 절친처럼, 그리고 자연스레 연인처럼 되었던 여자친구에게,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도, 그리고 어쩌면 너무 성스럽게도,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자기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에게 자기 여자친구와 사귈 것을 권하지만, 이로 인해 연인이 모두 상처를 받는다. 뜻밖에도 여자는 이미 더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남자 친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선배'와 사귀게 되고 그와 잠자리를 갖은 후, 이를 알게 된 남자친구는 그녀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홀연히 떠나버린다. 여자친구의 '배신(?)'에 의해 상처를 받아 자기가 존재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과거를 잊고자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독립기관>, 50대의 나름 잘 나가는 미혼의 성형외과의사인 주인공은, 자신의 홀가분한 솔로 생활과 나름대로 깔끔한 여자관계 -여기서 깔끔한 여자관계는 여러 여자와 동시에 세컨드로서의 관계를 맺지만 깊은 관계로는 가지 않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어느날 딱히 기존에 사귀었던 여자들과 다를 것 없는 유부녀-그전에도 유부녀와는 몇번 사귀었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 상사병에 걸리지만, 결국 자신은 그녀의 세컨드도 아닌 그녀가 남편과 이혼 후 다른 연하 연인과 살아가기 위한 현금인출기처럼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단식-책에서는 거식증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자발적 단식-을 하며 그녀가 없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생각하여, 무에 가깝게 말라비틀어져가다가 죽은 남자 이야기이다.

 

 <세에라자드>, 어떤 이유에서인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남자를 위해 며칠에 한번씩 찾아와 식료품을 챙겨주고 성욕도 풀어주는 유부녀에게 빠진 남자이야기이다. 남자는 그녀가 매번 섹스 후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를 더이상 못듣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만 사실 그녀를 다시는 못 보게 될 것이 두려움과 언젠가는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밖에 없다는 이미 정해진 미래에 두려워한다. 

 

 <기노>, 이모가 하던 작은 찻집을 개조하여 작은 선술집으로 만든 남자이야기. 그는 사실 평범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지닌 남편이었으나, 어느날 출장에서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부인이 회사 동료와 함께 자기와 아내가 같이 자는 침대에서 섹스를 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당시 그는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다'라고 생각했으나, 이후 '충분히 아프지 않았다'로 그리고 사실은 자신은 '상처받았다. 그리고 몹시 깊이'라며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잠자>,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야기인데, 이유를 모른채 자신의 몸이 아닌 몸에서 깨어난 남자의 이야기이다. 마치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 듯한 느낌인데, 자신의 의식이 점유한 몸에 대해서 익숙해지다가 자물쇠를 고치러 온 꼽추 여자에게서 강한 애정을 느끼고 그녀를 그리워하게 되는 남자이야기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 이 책의 제목이자, 책의 마지막 이야기이며 어느날 새벽에 자신의 옛 여자친구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그 남편에게서 들은 남자 이야기. 결국 이 이야기에서 하루키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모두 다 풀어서 해준다. 나같이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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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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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게 무엇인가. 이것도 하루키는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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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잘 아시다시피)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 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인지 상아해안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 때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때도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선원들조차 손쓸 도리가 없다.

 어쨌거나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홀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당신이 아무리 전문적인 가정학 지식을 풍부하게 갖췄다 해도,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육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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