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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한국 소설

칼의 노래 - 김훈

by YK Ahn 2018.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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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으로 휴가를 가기 얼마전에 가진 술자리에서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불쑥 나왔던 책인데, 당시 읽어보지 않았던 책이라 그런지 뭐에 관한 얘기였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한국 휴가때 알라딘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보이길래 사서 읽은 책이다. 때마침 한국 휴가 후 일본 오사카로 휴가를 갈 예정이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이순신과 조선의 최대 난적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근간이 이 오사카여서 오사카 여행 중에 읽기에는 뭔가 적합하면서도 적합하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 


 사실 일본에 여행 중에 읽으려고 했던 소설은 전부터 읽고 싶었던 미나토 가나에 소설의 <고백>이었는데 책이 재밌어 계속 읽다보니 출국 전에 책이 끝나버려 김훈 소설의 <칼의 노래>를 읽기 시작하였다.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장군의 시점에서 그린 소설인데, 1차 임진년의 일본의 침략이 아닌 2차 침략인 정유재란 때의 얘기이다. 이순신 장군이 1차 침략에서 큰 공을 이루었으나 정쟁에 휘말려 고문과 함께 관직을 박탈당하고 백의 종군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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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 속으로 불러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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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에서 얘기가 진행되는데,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등을 토대로 간결하고 직설적인 그의 말투를 복원하려고 해서 그런 것인지, 글이 특이하다. 모순적인 문장과 순환되는 논리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동일한 단어들의 반복이 굉장히 많은데, 예를 들어 '소멸', '분산', '집중', '울음', '적의 적' 등은 거의 몇개 문장마다 한번씩은 나오는 것 같았다. 


 소설은 이순신 장국의 백의 종군에서 시작해서 다시 좌수영으로 임관, 명량해전에서 노량해전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노량해전 중 전사하는 순간까지를 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터에서 겪었던 전쟁의 참혹함과 더불어, 조선의 정쟁에 의한 모순, 조선과 명 사이의 관계에 의한 모순, 일본과 조선 그리고 그 사이의 자신의 관계의 모순에 대한 고민들을 계속하면서 '베어낼 수 없는 적'으로 간주한 이러한 모순들에게서 빠져나갈 방법은 자신의 죽음으로 밖에 없음을 고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징징징' 울어대는 칼은 그의 가슴 속에 맺어진 억울함과 울분이고 세상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는데, 자주 피를 토하고 식은 땀을 흘리면서 잠을 청하는 그는 자신의 미래는 이미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영화 <명량해전>이 이순신의 자부심과 민족주의 혹은 흔히 말하는 '국뽕'의 영화라고 한다면, 칼의 노래는 오히려 당시 상황에 대한 암울함과 답답함 그리고 이순신 장군을 둘러싼 외적인 요소에 대한 내면의 고민이 더 주를 이루고 있다. 흔히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게 되는 유명한 해전들, 그 중 정유재란 당시 있었던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은 책의 내용 중 상당히 짧은 분량밖에 나오지 않으며, 오히려 당시의 배경과 상황, 사람들과 이순신 장군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다. 


 웅장한 전쟁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인 일대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 있는 책이지만, 이순신 장군을 단순한 1차원적 영웅이 아닌, 임진왜란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였듯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며, 당시의 모순된 상황 속에서, 그것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풀어내려고 했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좋아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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