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한국 소설

28 - 정유정

by YK Ahn 2019. 8. 4.
반응형

 바로 전에 읽었던 [The Lexus and the olive tree]에 많이 실망하고, 내게는 너무 따분한 책이었기에 가볍게(?) 기분 전환할 겸, 오래 간만에 한국 소설책을 손에 잡았다. 생소한 작가이고 생소한 책 제목인데, 아마 알라딘 서점에서 무심코 샀던 책일 것 같다. 

 

 개와 인간에게 전염되는 전염병에 의해 경기도의 가상 도시인 '화양시'가 초토화 되고, 정부는 그 안에 있는 화양시와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화양시에 '재수없게' 들어간 사람들을 화양시에 가둬두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아비규환이 된 시에서 살아남는 혹은 죽어가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러 주인공들의 시선을 오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그 중 특이한 것은 '링고'라는 '늑대와 같이 생긴 개'의 시선도 마치 한명의 사람처럼 진행되고 주인공 중 하나인 '서재형'은 미국 알레스카에서 개썰매 선수였다... 늑대-개와 개썰매...그리고 그 늑대개의 시선에서 보는 사람들. 마치 소설 [White fang]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기에는 너무 비슷한 것 같았다. 솔직히 [White fang]이 주는 긴장감과 세세함에는 못 미치고, 이렇게 다수의 주인공들의 시선이 서로 바뀌는 소설의 약점인, 주인공 서로간의 생각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은 심지어 이 늑대개에까지 전달이 되어 소설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었던 것 같다.

 

 소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28'은 전염병이 창궐한 28일간의 화양시를 보여주는데, 사실 '28'이라는 제목은 영화 [28일 후]가 너무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기에, 그리고 영화도 원인 모를 좀비 전염병에 의해 영국이 초토화되는 것이 줄거리라, '왜 굳이 이렇게 했을까'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이다..

 

 영화 후반으로 가면 전염병으로 봉쇄된 도시가 무법천지와 아비규환이 되는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런 장면들은 전염병에 의해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장님이 되는 주제 사라마구의 책 [눈먼자들의 도시]를 너무 생각나게 한다. 

 

 추가로, 화양시를 봉쇄한 정부는 책의 후반부에 헬기와 장갑차등에서 시청에서부터 가두 행진을 하는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우리 현대 역사에 나오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장면을 너무 projection하려고 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또한 전염병이 창궐하여 시민들을 '학살'한 후 '매장'하는 장면 또한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부분 중에 하나인 한국전쟁당시 몇몇 지방에서 일어났던 '양민학살' 장면을 너무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개와 인간이 서로 옮을 수 있는 전염병이라...생물학에서 다른 종간 병이 옮지 않는 것을 '종간 장벽'이라고 한다. 이 종간 장벽은 생각보다 굉장히 견고하고 단단한데,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대거 발발해서 셀 수 없는 돼지들이 살처분을 당하여도 축산업자나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일반인들이 걱정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종간 장벽 때문이다. 이 종간 장벽은 전염병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며 진압을 용이하게 해 주는데, 반대로 이런 종간 장벽이 무너진 전염병은 전염병이 돌고 있는 사회나 그 주변 사회까지 패닉상태로 몰고 가게 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전세계를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떨게 만들었던 광우병이다. 광우병의 '생물학적 후유증'이 아직 얼마나 그리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 '정치적' 후유증은 확실히 각인 시켰던 사회 중 하나인 한국에서 다시 한번 이 종간 장벽이 무너진, 이번에는 개와 인간 사이에 옮기는 전염병이라니... '좋은 주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쉬운(?) 주제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재미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재밌게 읽었다고 하기에는 왠지 옴니버스같은 느낌과 B급 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라고 말한다면 너무 잔인할 듯 하다. '그럼 너가 써보던가'라고 한다면 얼굴을 들기에도 창피할 정도의 글을 쓰고 평생 '이불킥'을 하게 될테지만...

 

반응형

'소설 > 한국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진기행 - 김승옥  (2) 2023.10.10
도둑맞은 가난 - 박완서  (1) 2023.06.04
칼의 노래 - 김훈  (0) 2018.10.14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0) 2018.09.27
채식주의자 - 한강  (0) 2018.09.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