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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북미 소설

No Country For Old Men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Cormac McCarthy (코맥 매카시)

by YK Ahn 2018.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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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책은 최근 몇년간 읽었던 소설책 중 가장 무섭게 읽었던 책일 것 같다. 이 책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살인자가 나오거나 귀신이 등장해서는 아니다. (당연히 귀신은 나오지 않는다)


 인간을 비롯한 포식자(predator)의 위치에 있는, 즉 먹기 위해서든 어떤 이유에서건 타살을 할 수 있는 동물들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먹잇감(Prey)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게 어떤 이유에서건, 예를 들어 포식자 앞에 있는 새끼를 본 어미나 흔히 말하는 '궁지에 몰린 쥐'등과 같이 자신 앞에 놓여진 극한 두려움을 초월하게 되면 포식자일지라도 생명의 위협이나 심각한 부상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위협이나 심각한 부상 혹은 자신이 입게될 데미지(damage)등은 거꾸로 포식자에게 두려움의 요소로 작용하게 되고 이 두렴움이 포식자로 하여금 유리한 상황을 포기하게끔 만든다. 


 일반적인 현대 사회에 있어서, 경찰이나 사법권은 단순히 범죄자에 대한 처벌뿐 아니라 오히려 범죄의 예방에 더 많은 노력을 쏟는데, 만약 어떤 사회에서 범죄 예방요소가 사라지고 오직 범죄에 대한 체벌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회의 사법권은 이미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그렇게 사법권이 실패한 사회는 흔히 말하는 부패와 폭력이 얼룩진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는데 그건 일반적인 사람들조차 '안걸리면 된다'라는 모랄헤저드(Moral hazard) 의식을 갖게 되고 그러한 의식들이 결국 사회 전체에 퍼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범죄 예방을 위해 '미수'에 그치 사건에 대한 것도 이미 저질러진 범죄에 준하는 처벌을 하게 되는 것이며, 매스컴에서 검사와 경찰들이 '완전 범죄 없다'라는 등, '범죄를 저지르면 언젠가는 꼭 처벌을 받게 된다'등도 이러한 잠재적 범죄요소에 대한 위협을 통해 범죄를 저지르면 결국 잡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예방 효과를 가지려는 것이다. 결국 야생에서 포식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게 만드는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인데, 사회에 속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인 이상 이러한 두려움, 사회에서 추방 혹은 격리되거나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범죄를 저지름에 있어서 가장 큰 저지 요소일 것이다. 그래서 인권문제가 계속 대두됨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에서 감시카메라를 계속 늘리는 이유에 이러한 두려움에 대한 저지 효과를 보려고 하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연쇄 살인마 Anton Chigurh 는 이러한 두려움에 의한 범죄 저지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연쇄 살인마 영화나 책을 읽어보면 결국 살인마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나 당황스러움 때문에 사건이 반전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는데, Anton은 그러한 감정이 전혀 없다. 타인에 죽음 뿐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매우 무관심 혹은 무감각하며, 범죄자가 가지는 범죄 후의 쾌락적인 감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사무실에서 걸어가는데 의자가 앞에 놓여 있어 그 의자를 치우는 행위처럼 아무런 감정없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살인 청부업자의 얼굴에 정면으로 샷건을 쏘는 상황이나, 주인공의 아내에게 왜 아내가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장면은 읽으면서 정말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Anton이 보여주는 살인 행동들은 복수심이나 어떤 감정에 의한 살인도 아니고, 어떤 중대한 목적이 있어 행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일상 생활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순간이 되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마치 아무 생각없이 눈앞에 맴도는 날파리들을 손을 쳐내는 것처럼, 살인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 어떤 의미도 없이 생명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눈앞에 있던 날파리처럼, 단지 그 순간 그 장소에 그 사람이 있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Anton에게는 이미 이 생명이 없어져야 될 이유가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뇌에서 두려움이나 그밖의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이 어떤 이유에서건, 사고에 의한 것이든 혹은 유전적인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든 간에,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고 사실 그런 설명이 있어주기를 바랬다.  (물론 그런 설명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타인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생명에 대한 무감각과 무의미가 Anton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면 이보다 더 두려운 것이 세상에 존재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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