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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과학/의학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

by YK Ahn 2019.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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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이 책을 선택해서 읽게 된 것은 사실 실수였다. 책 속의 중년의 남자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소설로 착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소설은 아니고 신경과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 박사가 경험했던 환자들의 대한 에세이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지만, 책 속의 내용은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실제 내용들이다. 

 

 신경과 의사인 저자는 자신이 상담 혹은 치료했던 환자들 중 특별한 '고객'들의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뇌나 중추 신경계에 선/후천적 질병이나 사고로 일반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선후천적인 뇌 기능의 부분적인 문제들로 인해 나타난 현상들에 대해서 저자는 4가지로 구분해서 이야기 해주고 있다. 이러한 4가지 구분은 기존의 신경학이 환자를 보는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기존에는 '결손' 혹은 '결핍'으로만 보던 방식을 비판하고 있다. 

 

 이 4가지 구분은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등으로 나눠지며 각 구분에서는 여러 환자들의 경험담이 실려 있다. 

 

 <상실>에는 이 책의 제목이며 시각적으로 전체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시각적 인식불능증을 앓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인  '아내로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더불어 1945년 이후로는 기억이 남지 않고 만들어지지도 않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길 잃은 뱃사람'이야기 등이 있다.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에서는 제육감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신의 몸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여 자신의 몸을 더이상 '느끼지' 못하고 시각으로만 판단하여 생활해야 하는 여자이야기가 나오며, 이 제육감의 일부분을 상실하여 자신의 다리를 자신의 것으로 느끼지 못하고 의족이나 다른 사람의 다리가 자신의 몸에 붙혀져 있다고 생각하여 패닉에 빠진 남자 이야기인 '침대에서 떨어진 남자' 이야기도 있다. 이외에도 한번도 자기 몸의 감각을 사용해 본적이 없는 환자 이야기인 '매들린의 손', 절단된 몸의 일부를 여전히 느끼는 '환각', 고유감각을 상실하여 수평감을 잃게 된 남자 이야기인 '수평으로', 왼쪽의 개념이 완전히 뇌에서 사라진 여자 이야기인 '우향우!',  언어 인식 상실증에 걸린 환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통령의 연설'도 있다. 이 <상실>에서 나오는, 이렇게 몸의 일부 감각이나 능력을 상실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치료하며 저자는 우리가 느끼는 못하는 우리 몸의 능력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지 얘기하지만, 이 환자들을 단순히 '결여'나 '결핍'이 아닌 시선으로 보는데, 이들이 느끼고 보는 것들은 정상이라고 말하는 우리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 단순히 뭔가가 부족한 사람들이 아닌, 우리 몸의 일부 능력이 상실되어 다른 능력이 더 발달하게 된 사람들로, 즉 하나의 전체적인 인격체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잉>에서는 틱 장애를 앓고 있지만 이 틱 장애를 자신의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그 틱 장애를 활용하여 입담꾼과 멋진 예술가로 살아가는 '익살꾼 틱 레이', 투렛 증후군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된 신경매독에 의해 무한한 상상력과 늘 즐거운 흥분상태를 느끼는 여자 이야기인 '큐피드병', 코르사프 증후군에 의해 기억상실을 겪고 있지만 이 기억상실에 의한 공백을 무한한 자신의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채워나가는 남자이야기인 '정체성의 문제'와 해학증에 걸린 여자 이야기인 '예, 신부님, 예, 간호사님', '투렛 증후군에 사로잡힌 여자' 이야기등이 나온다. 

 

 이 <과잉>에서 저자는 기존의 신경학이 가지고 있는 개념이 '결손'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비판하는데,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이러한 환자들의 부족한 능력에만 집중을 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병에 의해 생성된 자아에 대해서는 보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병과 싸우지만 실제로는 병과 같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며 이들의 보여주는 세계는 유쾌해 보이지만서도 사실 산산히 조각나져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행>에서는 대부분 발작을 동반한 간질로 고통받는 혹은 받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뇌의 관자엽 부분에 손상을 입어 자신의 너무나도 그리워했던 과거에 대한 음악이 어느순간 끊임없이 귓속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을 경험했던 노부인 이야기인 '회상'. 대뇌 피질 자극에 의해 기억하지도 못했던 40년전의 기억, 느낌, 냄새, 말투 등 모든 것이 갑자기 되살아났던 여자 이야기인 '억누를 길 없는 향수', 악성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어린아이에게 보이던 환상에 대한 이야기인 '인도로 가는 길', 약물 중독에 의해 모든 것을 개처럼 후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던 '내 안의 개'와 역시 약물 의해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 전혀 기억하지 못하다가 이후 사고로 인해 다시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어 고통받는 남자 이야기인 '살인' 및 늘 환영을 보는 '힐데가르트의 환영' 등이 있다. 

 

 이 부분에서 '인도로 가는 길'은 이 책에 있는 이야기 중 가장 슬픈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악성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여자아이가 자신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자신의 고향인 인도로 돌아가는 환상을 계속 보게 되는, 그리고 그런 '멍하게 환상을 보는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지만 아이는 자신의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안도하며, 하루종일 환상을 보게 되는 상태가 되자 자기 스스로도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고향에 거의 도착했다는 것을 통해서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 <이행>을 통해서 우리 뇌속에 '사람을 과거로 이행시키는 심상과 기억의 힘'이 관자엽과 변연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인간의 뇌는 '신비로운 직물기'이며 이를 연구하면 '우리 뇌가 어떻게 마법의 융단을 짜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챕터인 <단순함의 세계>에서는 지적장애인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들 또한 단순히 '모자란' 사람들이 아닌 정상인과는 다르지만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시인 레베카'에서는 심각한 지적 장애를 앓고 잃지만 알고보면 시적 감수성이 너무나도 풍부한 여자아이 레베카 이야기가 나온다. 6,000쪽의 음악가 사전을 통째로 암기하고 있지만 글을 쓸 줄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는 정신 지체 이야기인 '살아 있는 사전', 매우 단순한 산수조차도 못하지만 자신들이 본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며 컴퓨터나 계산기의 도움 없이도 12자리의 소수(1과 자신을 제외한 어떤 수로도 나뉘어지지 않는 수)를 찾아내던 '쌍둥이 형제'이야기, 사진 속 자연을 보며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정을 넣어 그림을 그릴 수 있던 '자폐증을 가진 예술가' 등의 이야기도 있다

 

 <단순함의 세계>에서는 저자가 이 환자들을 보는 따뜻한 시선, 단순히 문제를 찾아내고 분해해서 부족함을 지적하는 의사가 아닌 이 환자들을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보는 그런 시선이 굉장히 강하게 나타나며, 저자는 파크 박사의 말을 인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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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의 비밀은 좀더 특별한 곳에 있다. 모츠기는 이 지능 낮은 예술가를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살기로 했다. 상대를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헌신,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모츠기는 이렇게 말했다.

 "야나무라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한 일은, 그의 영혼을 내 영혼으로 여기는 일이었다. 교사는 아름답고 순수한 뒤처진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정제된 세계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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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챕터에서 정신지체인 시인 레베카는 의사인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살아 있는 양탄자와 같아요. 양탄자에 있는 것과 같은 무늬와 디자인이 필요해요. 디자인이 없으면 뿔뿔이 조각나고, 그것으로 끝이예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단순히 이들을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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